2007년 1월 1일부터는 회원국이 27개국으로 확대되었다.
또한 유럽은 아니지만 몇몇 유럽 연합 회원국의 속령도 유럽 연합의 일부이다.
스페인의 카나리아 제도(아프리카), 포르투갈의 아조레스 제도와 마데이라 제도(아프리카), 프랑스의 과들루프(서인도 제도), 레위니옹(아프리카), 마르티니크(서인도 제도), 프랑스령 기아나(남아메리카) 동구권의 여러 국가들은 유럽 연합 가입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그 중 정식으로 가입 신청을 한 국가는 다음 3개국이다.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알바니아는 공식적으로 가입에 관심을 표명하였다. 이외에 그루지야, 몰도바,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도 가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한국과 유럽연합의 상호관계는 그 실질적 중요성과 비교했을 때 정치적이거나 외교적인 가시성은 크게 떨어지는 경향을 보여 왔다.
물론 이런 상황에는 구조적인 요인들이 작용하였다. 한국의 경우 안보 중심적 사고는 ‘주변 4강’의 중요성을 확대하였고 냉전시대의 대미 종속적 사고는 미국 이외의 국가를 바라보는 것을 방해하였다. 유럽의 경우 통합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외부에 외교력을 집중할 만큼 여유가 없었고, 여유가 생긴 다음에도 동아시아는 뒷전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소원한 관계는 1990년대 들어서부터 조금씩 변화해 왔다.
냉전에서 탈냉전으로 시대가 변하면서 안보 부문에 비해 경제 부문의 중요성이 서서히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이런 변화 속에서 한국도 유럽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유럽 역시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역동적 경제가 그들의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였다. 이에 유럽은 1993년 신아시아 전략을 수립하기에 이르렀고, 1996년부터 아시아 유럽 정상회의(ASEM)가 제도화되었다. 한국의 경우 유럽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 계기는 1997년 경제위기를 맞았을 때라고 할 수 있다.
당시 국내에 투자되었던 외국 자본의 가장 커다란 부분을 유럽이, 그리고 다음을 일본이, 마지막으로 미국이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평소에 생각지 않았던 유럽의 역할을 상기시켜 주었다. 또 2005년 3월 현재까지도 국내에 투자된 외국 자본의 31%인 245억 유로는 유럽연합에서 도입된 것으로 유럽이 미국이나 일본에 앞서 단연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한국의 주요 수출시장으로도 유럽연합은 미국을 앞질렀거나 비슷한 수준이다.
이처럼 부당하게 평가되는 유럽의 중요성이 그나마 재고되었던 것은 2000년 ASEM 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하면서이다. 당시는 아직 유럽연합의 중·동구 확대 이전이라 수는 지금보다 적었지만 한국에서 수십 명의 국가 원수 및 정부 수반들이 모이는 회의였던 만큼 외교력이 집중되었고, 그 결과 유럽을 향한 지적·사회적 동원을 경험하였으며 몇 가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추진하였다. 2001년부터 한국과 유럽연합 사이에는 무역과 협력을 위한 기본협약이 발효되어 양자관계의 기본을 형성하고 있고, 최근 2006년에는 과학기술협정이 체결되었다. 한국은 또한 유럽연합이 추진하는 갈릴레오 위성 프로젝트에 동참하기로 결정하였다.
유럽이 한국에게 중요하게 다가온 또 다른 분야는 대북정책에 있어서이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일방적 독주를 견제하려는 유럽연합의 입장에서 한반도에서의 대화와 화해, 협력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였고 이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모두 작지만 소중한 자원으로 작용하였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은 2001년 5월 당시 의장국인 스웨덴의 페르손 총리, 대외관계 집행위원 패튼, 그리고 외교안보 고위대표인 솔라나 3인방이 평양을 방문하여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유럽연합 대표단은 또 2007년 3월 6~7일에도 북한을 방문하는 등 한반도의 대화 채널로 적극적인 역할을 희망하고 있다.?
유럽은 북한의 핵실험 사태 이후에도 북한에 대한 유엔의 사치품 수출 동결과 같은 제재조치에 참여하면서도 인도적 지원을 계속하겠다고 천명하였다. 또 이와 동시에 2006년 11월에는 유엔 인권결의안을 주도적으로 제안함으로써 이 부분에 대한 압박 수위를 낮추지 않았다. 한국의 입장에서 유럽연합은 하나의 외교적 방향의 기준이 될 수 있고 자원이 될 수 있다.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일방주의적 경향을 자주 보여주는 미국이나 과거 부정적이고 중상주의적 성향의 일본, 그리고 기본의 정치적 가치에 있어 우리와는 전혀 다르거나 멀리 있는 러시아나 중국과 공유할 수 있는 외교적 가치와 문화는 많지 않다.
유럽연합은 스스로가 여러 국가의 연합이기 때문에 자국 또는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기 보다는 보편적인 가치를 내세우는 경향이 있고, 극단적인 방법보다는 온건한 해결책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으며, 대화와 타협이라는 노력을 행동 및 제재와 적절히 병행하는 깊은 역사에서 비롯되는 실용주의적 경향이 있다. 기후 변화에 대한 유럽의 모범적 노력이나 이란과 지속되는 대화와 타협 등은 위와 같은 경향의 대표적 사례라고 하겠다.
끝으로 우리가 유럽 통합의 반세기 역사에서 무엇인가를 배워야 한다면 그것은 통합의 동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유럽 사람들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통합하기로 결심한 것은 수백 년 동안 민족주의들 간의 내부적 경쟁과 전쟁의 결과가 모두의 파멸로 귀결되었다는 공통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이 긴 과정이 똑같이 불행하게 반복되지 않고 곧바로 민족 간의 공존과 통합의 길로 들어설 수 있기를 기대한다.(konas)
출처: 세종연구소 '정세와 정책'